영웅 없는 나라

1. 들어가며
바야흐로 소프트웨어 시대가 도래했다.
벤처붐 빵 터질때 쌈짓돈 탈탈 털어서 투자한 국민을 울렸던 그 소프트웨어, 그 얄미운 것이 이제 다시 이 나라의 희망으로 멋지게 컴백한 것이다.
1999년 당시 대학 2학년이던 나는 조그만 벤처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 했는데, 딱히 기술도 없던 회사가 신문에 광고 한번으로 투자금 10억을 모았다. 곧 200평은 족히 되는 사무실을 임대해 이사했고, 회사 임직원은 뜨거운 마음으로 밤낮없이 일해 그 돈을 다 날렸다. 그 당시 내가 일했던 그 회사 같은 곳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생히 기억난다. 오죽했으면 그때 최고 신랑감 1위가 벤처사업가 였겠는가?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35위쯤 된다고 한다. 34위가 광부라고 하던가 배 있는 어부 (36위-배없는 어부) 라던가? 아무튼 그리 화려했던 그 회사들은 이제 구글로 검색을 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부는 소프트웨어 바람은 양상이 다르다. 국민들의 기대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쏠려있다. 즉 “우리 뒤통수 친 구글좀 혼내줘!”, 이런 화려한 복수극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언론들은 이런 기사들을 주구장창 내보내고 있다.

“삼성에 대한 걱정에 송구, OS문제 걱정 안해도 돼… 바다도 있고 리눅스 기반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곧 나와” – 최지성 부회장 [1]

염려하는 우리를 달래기 위한 그분들의 배려는 곧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인력 2만명에 달함” [1] 혹은 “소프트웨어 인력 따로 선발” [2] 등의 기사에 구구절절 드러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통일을 노리던 구글은 이제 큰일이다. 중공군이 바글바글 압록강 건너듯  “2만+α” 의  소프트웨어 인재들이 구글을 다시 밀어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컴퓨터학과 학생들에겐 좋은 세상이다. 그들은 이제 삼성의 +α 인재들로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수만명 인재들이 만들어낼 제 2의 안드로이드, 클라우드, 소셜네트워크를 생각하니 너무 흥분돼 키보드 치는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린다.

2. 실리콘밸리의 영웅들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영웅의 역사다. 실리콘밸리의 영웅은 자본과 인재로 넘치는 큰 조직에서 나오지 않았다. 한 시대 관점에서는 아웃라이어 (outlier) 인 사람이나 기술이,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점에 영웅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즉 구글이 웹 패러다임의 영웅이 되었듯). 지금까지 실리콘밸리 역사를 바꾸었던 소프트웨어 기술과 회사들은 항상 이런 패턴으로 발전했다.

  1. 본업 (학교/회사)이 따로 있는 프로그래머 A가 잉여짓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 [참조 3]
  2.  A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큰 조직(회사)에 알린다. 윗분에게 뻘짓 했다는 소리만 듣는다.
  3. A는 조직 밖 대중에게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한다.
  4. 투자자들의 눈에 띄어 투자를 받는다. A는 마음맞는 프로그래머들을 뽑아 제대로 회사를 시작한다.

위의 기본 공식에 몇가지 사례를 한번 대입해 보자.

  •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포드에서 박사 논문 준비중 떠오른 검색 알고리즘 Page Rank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본업인 박사 논문은 뒷전이다 (1 만족). 구현된 프로그램을 그 당시 잘 나가던 야후! 의 임원진(창업자 제리양이 스탠포드 선배)에게 보여주고 거래를 제의한다. 야후는 포털인데 검색기능이 너무 훌륭하면 사람들이 금방 포털에서 다른 사이트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거래를 거절한다 (2 만족). 래리와 세르게이는 아이디어가 팔리지 않아 결국 자신의 기숙사 컴퓨터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3 만족).  곧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등 몇사람으로 부터 100만불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4 만족). [참조 4]

  • HP에서 일하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Atari 라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던 스티브 잡스는, 원시 PC Altair 에 매혹된 동호회 모임 Home Brew Computer Club (집에서 만든 컴퓨터 클럽) 의 다른 회원들에게 자랑할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1 만족). 워즈니악의 세련된 디자인에 동호회 사람들은 감동하고 (3 만족) 이에 확신을 얻은 잡스는 아직 HP를 떠나지 않은 워즈니악을 설득해 회사를 설립한다. Markkula라는 동네 부자가 2억 5천만원을 투자해 본격적으로 잡스의 집 차고에서 애플 PC를 만들기 시작한다 (4 만족) [참조 5].

  • 빌게이츠와 폴앨런 역시 하버드 신입생 시절 Altair PC에 매료되어, 본업이었던 수업에 나가지 않고 BASIC 컴파일러를 만든다 (1 만족). 그의 BASIC 컴파일러는 곧 위에 언급한 Home brew computer club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게 된다 (3 만족).  게이츠는 타고난 사업 수완을 발휘해 그 원시적인 BASIC 컴파일러로 돈을 벌고, 곧 IBM과 DOS 계약을 체결해 따로 투자를 받지 않고도 사업을 궤도에 올린다 (4 만족) [참조 5]. 참고로 갓 21살 빌게이츠가 클럽 사람들에게 자기 소프트웨어는 돈 내고 쓰라고 공개 편지를 쓴 사건은 오픈소스와 독점소스의 역사를 나누는 기준이 된다 (http://g-ecx.images-amazon.com/images/G/01/books/orly/GatesLetter.pdf).

  • 지금 우리 회사 (Eucalyptus systems) 도 정확히 이 패턴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9년 UC 산타바바라에서 교수(Rich Wolski)와 대학원생, 포닥으로 이루어진 6명은  본업인 논문은 안쓰고 몇달간 아마존 클라우드를 오픈소스로 구현하기 시작한다 (1 만족). 이 소식을 접한 옛날 그리드 컴퓨팅 사람들 (시카고의 Ian Foster등)은 클라우드는 그리드랑 똑같으니 뻘짓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2 만족). 간신히 초기 버전을 만들어서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곧 수천번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다 (3 만족). 이어서 바로 몇개의 투자 회사(VC) 들이 250억 이상을 투자하고 현재는 60여명 정도의 직원으로 성장한다 (4 만족).

나는 위의 기본 템플릿에 실리콘밸리의 영웅들과 혁신적 기술을 대부분 때려 맞출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기존의 조직 (학교/회사)에서 받아들일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든 아웃라이어 (outlier) 해커들은 IT의 큰 패러다임 변화 (PC, 웹, 클라우드) 속에서  영웅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국을 10여년 세우고 나면, 또 새로운 영웅들이 위의 템플릿에 맞추어 등장하고, 기존 영웅들을 역사속으로 보내버린다.

3. 왜 꼭 영웅인가?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지배하고 성장시킨다. 주변에서 조언해주는 어른들은 분명 도움이 되지만, 창업자가 가지고 있는 명확한 비전에 따라 회사의 흥망 성사가 결정된다. 쥬커버그가 이제 만 26살 이지만 페이스북 가치는 삼성의 100조원 시가총액에 가깝게 평가받는다. 지구를 한동안 지배한것 같은 구글의 레리와 세르게이는 이제 갓 30대 후반이다. 우리의 기업 조직 — 5,60대 임원들의 지휘하에 40대 부장, 30대 과장, 그리고 20대 일꾼들 — 은 새마을 운동 시절부터 변함이 없지만, 실리콘밸리는 젊은 영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컨셉”에 의해 재편된다. 이는 창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인 소프트웨어들은 한, 두 명의 핵심 해커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예를 들어, Unix와 C언어는 켄 톰슨, 데니스 리치 두 사람이 개발했다. Java 언어는 제임스 고슬링 혼자 만들었고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TCP/IP는 빈트 서프와 로버트 칸 이 만들었다. 물론 후에는 여러 엔지니어가 참여해서 개발을 돕지만, 여전히 기술을 지배하는 건 소프트웨어 영웅들이다. 예를 들어 리누스 토발즈는 지금도 리눅스 커널에 모듈을 추가할지 여부에 대해 100% 독재적으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이렇게 소개하기도 했다: “My name is Linus Torvalds and I am your god [6]”)

나는 이러한 인물 중심적인 발전은 소프트웨어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브룩스는 그의 베스트셀러 The Mythical Man-month에서 끊임없이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 을 강조했다. 즉 아무리 큰 규모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단 한명만 소프트웨어를 디자인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 예를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로지 그의 감각에 의해 디자인되는 애플 제품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흥분을 하나? (너무 흥분해서 싸우기도 잘한다) 빌게이츠가 MS의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자리에서 물러나기전 레이 오지라는 천재 SW 디자이너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아예 그의 회사를 사 버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8]. 그마저 떠나고  “MBA 경영인” 스티브 발머가 이끄는 MS는 지금 얼마나 많이 헤매고 있나? 구글의 역사를 다룬 책 “In the plex” [4] 에서는 CEO 에릭 슈미츠 (그 자신도 Lex를 만든 유명한 SW 엔지니어) 뒤에 가려진듯 했던 레리와 세르게이가 핵심 제품들 디자인에 얼마나 깊게 관여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구글의 심플한 디자인과 “I’m feeling lucky” 버튼은 레리의 고집, 곧 “개념의 일관성”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밑바닥 해커에서 시작한 영웅의 비전이 신개념을 창조하고, 그의 독점적 지배하에 개념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1998년 구글 홈페이지: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실리콘밸리는 그래서 영웅의 흥망성쇠에 따라 끊임없이 이동한다. 나 같은 범인 프로그래머들은 영웅이 창조해 낸 새로운 시대를 따라갈 뿐이다. 운이든, 안목이든 조금이라도 빨리 영웅의 스타트업에 몸을 담는 사람은 평생 그 혜택을 누릴수 있다. 구글에서 마사지해주던 안마사는 지금 넓은 저택에서 안마 받으며 살고 있다. 아래 그림처럼 새 영웅 쥬커버그의 도래에 실리콘밸리의 재능들은 그의 영지 페이스북으로 몸을 맡기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주식 상장 하는 날에 일찍 주군을 모신 사람들은 포르쉐 매장으로 향하는 거다.


출처: http://www.fastcodesign.com/1664037/infographic-of-the-day-facebook-is-winning-silicon-valleys-talent-war

4. 결론
우리 소프트웨어 영웅은 그럼 누군가? 1938년 창업한 삼성그룹의 오너가 영웅이라면, 그 영웅은 좀 너무 쉬어버린것 아닌가? 거기서 조직을 관리한 임원들을 영웅으로 모시기에는 그분들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철학 부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예: 2만+α 양병론). 벤처붐 이후 살아남은 기업들 (NHN, 다음 등), 그곳의 영웅들은 여전히 해커의 통찰력과 개념의 일관성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 그랬으면 네이버 검색의 품질이 훨씬 좋았겠지? 나는 실리콘밸리 해커들의 전설이야기에 매일 흥분하는데, 그 이름이 하도 많아 외울 수 조차 없다. 한국의 전설적인 해커는 그 이름을 들은적이 없으니 외울수가 없다.

영웅이 없는데 “2만+α” 의 소프트웨어 인력은 무엇을 해야 하나? 정부와 기업의 잘 관리된 조직과 플랜에 따라 척척척 “한국형 안드로이드”, “한국형 클라우드”, “한국형 소셜네트워크”를 만들어 내겠지? 해커가 밑바닥부터 일구어낸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보다는 임원단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명령체계가 소프트웨어 강국을 만들어 낸다면 나는 그 날로 우리 아버지 시골집에 내려가 소나 키우련다.

끝으로 나는 10여년전의 벤처 바람이, 그런 광풍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훈풍으로 불길 바란다. 그때 크게 데이신 분들이 눈살을 찌푸릴지 몰라도, 한번 더 우리의 잉여력을 믿어주고 부동산으로 돌아갈 돈이 소프트웨어 영웅들의 손에 쥐어졌으면 한다. 우리가운데 영웅은 분명히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박상민 http://twitter.com/#!/sm_park

[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3/2011090300287.html
[2] http://media.daum.net/cplist/view.html?cateid=1006&cpid=129&newsid=20110901110341745&p=seouleconomy
[3] https://sangminpark.wordpress.com/2011/08/23/%EC%86%8C%ED%94%84%ED%8A%B8%EC%9B%A8%EC%96%B4-%EC%9E%89%EC%97%AC%EC%99%80-%EA%B3%B5%ED%8F%AC/
[4]  In The Plex: How Google Thinks, Works, and Shapes Our Lives, by Steven Levy
[5]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http://www.yes24.com/24/goods/2256?scode=032&srank=16
[6] Just for Fun: The Story of an Accidental Revolutionary, by Linus Torvalds and David Diamond
[7] The Mythical Man-Month, by Fred Brooks
[8] http://news.cnet.com/Microsoft-to-buy-Groove-Networks/2100-1014_3-5608063.html

영웅 없는 나라”에 대한 50개의 생각

  1. RSS 구독을 통해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따른 피드는 대충 대충 넘기지만 박상민님의 글은 꼼꼼히 읽어봅니다 ^^ 대충 쓴 글이 아닌, 리서치가 제대로 된 좋은 글들, 항상 감사합니다.

  2. 안녕하세요 글만 읽다가 처음 코멘트 남깁니다.
    항상 좋은글 감사드리구요
    소프트웨어 쪽으로 진로를 잡은 학생인 저로써는 항상 한국의 개발자를 무시하는 현실에 낙담하게 되네요 ㅠㅠ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박상민님은 해결책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3. 안녕하세요, 클리앙 타고 들어왔다가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저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하고 IT 산업 군에서 일을 시작했고, 앞으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은 새내기 인데, 박상민님의 글을 읽고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공계 분 중에서는 상당히 필력이 좋으신 것 같습니다.
    단번에 좍 읽힙니다. 물론 내용이 받쳐주지 않은 필력은 의미가 없겠죠.

    자주 들리겠습니다. 건승하시길…

  5. 어쩐지 이젠 조셉 캠벨의 을 읽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이미 읽으셨나요?
    그렇다면, 크르스퍼 보글러의 이거나.

    1. 글을 읽어보니 엉뚱한 곳에서 영웅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게 아니라면,
    2.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사실은 트릭스터(길마니)가 아닌가요?

    1의 이유:
    당신이 찾는 영웅은 대개 자기 마을에서 쫒겨나죠.
    소명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성의 소프트웨어 인력 2만명 안에서 쫒겨날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게 더 나을 지도 몰라요. 제 말은 돌아가는 상황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가올 축제를 준비하세요.

    2의 이유:
    위에 당신이 예를 든 사람들은 사실 영웅이 아니에요.
    다들 트릭스터들이죠.
    (21세기도 영웅들이 지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트릭스터들이 지배하는 시대예요.
    당신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영웅이 있는 신전이 아니라 트릭스터들을 만날 수 있는 길목이어야 하죠.
    그곳에 나가 앉아계시나요?

    사실 본인도 이미 트릭스터잖아요.

    원래 영웅은 없어요. 없는 것을 자꾸 찾으려다보니 한탄과 탄식과 고민만 늘어날 뿐입니다.
    앞으로 당신의 글에서 영웅이라는 단어를 지우세요.
    단어가 은연중에 던지는 마력은 무시무시합니다.
    그 단어의 올가미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보세요.

    이질적인 두 문화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 두 곳에서 모두 환영받고 또 배척당하는 사람, 어느 곳의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사람, 두 문화를 이어주는 길을 찾아가는 길마니.

    길마니, 트릭스터는 불평하지 않아요.

    • 눈에 확 띄는 댓글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2만 양병중에 그곳을 뛰쳐나가 영웅(혹은 트릭스터) 이 나오게 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겠죠. 하지만 우리 문화와 사회 인프라가 과연 그걸 허용하느냐는 생각해볼 문제인듯 합니다. 영웅을 대체하는 길마니(!)…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왠지 마음이 가는 컨셉이네요. 과연 단어 선택의 차이인지 아님 확연히 다른 현상 설명인지 추천하신 책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두 차이에 대해 더 답글 달아주세요…

  6. “우리나라는 한 번 실패를 하면 끝이라고 말씀하셨었죠. 그래선 안된다고, 실패를 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그런 구조가 이루어져야 말씀하시는 영웅이 이 나라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이 클리앙 댓글에 달렸어요.

    이 말은 절반에 절반에 절반에 절반에 절반만 옳은 말입니다.

    당신도 동의하시죠?

    사실 저 위의 말은 옳은 말이 아니에요.

    ‘실패를 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구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는 사고방식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있어요.

    ‘내가’ 가 빠져있어요.

    그런 기회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지, 남들이 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 구조가 만들어져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 웃기는 얘기입니다.

    스스로가 그런 구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죠.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 밑에 깔려있어요.

    누가 다 만들어놓은 곳에서 흥이 나서 일을 할 생각이 드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 음 전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실패하고서도 일어서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실패하면 매장되는 사회는 현실적인 장벽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읽게 되는 이력서를 보면 실패한 벤처 경력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벤처 캐피탈은 또 돈을 대줍니다. 실패하고서도 배운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더 예를 들어 예전 버지니아 텍에서 총격사건 났을때 총장이나 실무진이 실수가 있었음에도 총장이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식으로 생각한 전 총장을 해임시키지 않는 언론과 사회가 충격이었습니다. 실수하면 책임을 지우는 사회, 이것은 우리나라가 (그리고 옆에 일본도 마찬가지) 갖고 있는 소프트웨어 문화에 있어 중요한 결점이라 생각합니다. 버그는 매일매일 발생합니다. 그것들에 하나 하나 책임을 물으면 프로그래머는 살수가 없습니다.

  7. 우리는 Architect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전체 산업에서, IT에서 소프트웨어에서 소셜웨어에서… 100으로 100을 만드는 미국이라면 200으로 95를 만드는 한국이랄까? 설계도 없이 집을 짓고 항해사 없이 항해하는~

  8. 아마존 웹 서비스가 실리콘 밸리의 역사를 바꾸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든데, 이 기술은 말씀하신 패턴에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깐 생각해보면 맞지 않는 사례가 더 많은 듯 합니다.

    일전에 댓글로 달았듯 저는 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실리콘 밸리를 정의하는 사건은 넷스케이프라고 보는데, 마크 앤드리슨 역시 패턴에 잘 맞지 않습니다. 마크 앤드리슨은 국가 수퍼컴퓨팅 센터에서 월급을 받으며 모자이크를 만들었습니다.

    • 아 이 글에서는 딱히 클라우드를 얘기한건 아닙니다. 실리콘밸리 전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전 앤더슨 역시 이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모자이크 구현할때 그의 정규 직업은 학생이었으니까요…

      • 저도 실리콘 밸리 전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지 몰라도, 아마존, 넷스케이프는 내러티브에 잘 맞지 않는다는 거죠. 끼워 맞추면 안 맞는게 어디 있나요? 학생 인턴은 직원 아닌가요? 모자이크는 학생 인턴과 정직원 에릭 비나가 만들었죠. 속한 조직의 지원을 받았구요. 아마존 웹 서비스는 아마존에서 탑다운으로 만든 거 아닌가요?

  9. 한 가지 질문하고 싶은 것은, 경영자가 소프트웨어 영웅인가 하는 것입니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스티브 워즈니악, 빌 게이츠가 평균 이상의 훌륭한 프로그래머인 것은 사실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폴 앨런은 경영, 마케팅이니 논외구요.) 하지만 그들은 훌륭한 프로그래머라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훌륭한 경영자여서 영웅이 된 것입니다.

    구글의 소프트웨어 영웅은 Urs Hölzle 아닌가요? 애플의 소프트웨어 영웅은 Andy Hertzfeld 아닌가요? 마크 앤드리슨이 모자이크를 만들었지만 넷스케이프의 소프트웨어 영웅은 Jamie Zawinski 아닌가요? 경영자이면서 소프트웨어 영웅이기도 한 사람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page rank를 개발하고 구글 검색엔진을 개발했다는 실적으로 봤을 때 제 기준에서는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머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평범한(?) 수준이라고 하시니 서상현 님의 스텐다드는 꽤 높네요..^^;;

      • 래리 페이지가 처음 만든 구글 크롤러는 성능이 나오지 않고 scaling이 되지 않아서 다 버리고 재작성해야 했습니다. 그걸 새로 만든 사람이 Urs Hölzle이죠.

    • “평균”의 기준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그리고 폴 앨런은 뼛속까지 개발자였던 걸로 아는데, 경영/마케팅 롤로 포지셔닝 하는 건 좀 아닌 듯…

  10. 전 소프트웨어 천재들이 경영에도 천재였던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빌게이츠, 페이지, 브린, 에릑 슈미츠 심지어 오라클 래리 엘리슨까지 훌륭한 프로그래머들이 수조원의 비지니스를 만들어 낸건 프로그래머라는 직업과 IT경영이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간접적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는 인물이 지배하는 “conceptual integrity (개념의 지속성)” 입니다. 그 적용예재는 기술이 될 수도 있고 (리눅스, Java등), IT 경영이 될수도 있습니다. 둘 다 이룬사람이 영웅이다 라는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11. 안녕하세요. 좋은글 보고 갑니다.
    우리나라의 영웅도 없지는 않았죠. PC통신 시절의 이야기, 아래아 한글, V3등 그때 당시에는 실리콘 벨리 부럽지 않을 우리의 영웅들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에 후속으로 성공한 모델은 온라인 게임회사밖에는 없다는게 문제네요. 그래도 이스트 소프트등의 최신행보는 지켜볼만하지만 뚜렸히 2000년도이후에 IT붐에서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가 이런 투자를 꺼려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현재는 S/W개발은 SI와 대기업 중심으로만 흘러가는 안타까운 상황이네요.
    문제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런 꿈을 꾸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말했던 그런 “공포”(취업+안정된직장)가 너무 이른 시간에 젊은이들에게 쒸어져 벗기가 어렵네요. 물론 S/W의 안정된 위치와 처우가 문제이긴 하지만요.

    • 저도 90년대까지 한국이 융성했다는거에 심히 동감합니다. 벤처붐의 부작용 때문인지 그담부터 성공 스토리는 없고 말씀하신대로 SI와 을의 공포만 남은거고요…대학생들한테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저도 꼭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블로그 글을 쓴 이유중 하나도 그거고요..답글 감사드립니다!

      • 님과같은 분들이 작으나마 좋은 글과 논쟁이 되는 글을 올려서 우리가 모두 잊고사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고민하고 생각해볼 문제들을 많이 제시해 주셔서 우리 나름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12. 실리콘밸리와의 비교와 그들의 성공에 “영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되려 잘못된 생각을 부추길까 염려됩니다. 큰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이 세상의 영웅일 세상이라면 굉장히 갑갑합니다. 또한 이들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현실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말씀하시는 영웅이 나타날때까지 소프트웨어 종사자들은 기다려야된다는건가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하기 쉽기도 하고 참 난감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서론과 결론이 본론과는 이어지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래아한글에 워드도 깨갱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해커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스티븡레비의 해커스에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그렇게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없다면 문제일지도요). 이들이 그렇게 큰 회사로 성공하지 못하고 단지 이 현상 유지의 실패가 영웅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것도 아닐겁니다. 위에 서상현님이 적은 것처럼 소프트웨어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이라면, 이런 큰 회사를 만든 성공 이외의 수많은 성공들이 있고, 되려 그들이 소프트웨어 영웅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 우리 나라 해커들의 이야기를 누가 책으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한국에 들여온 전길남씨라거나 (Where Wizards Stay Up Late라는 Hackers의 인터넷 판에 나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그 전길남씨의 제자이고 바람의 나라와 넥슨, 리니지와 엔씨소프트를 낳은 송재경씨라거나 (세계 MMORPG의 역사에 자취를 남겼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소프트웨어 영웅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 저도 완전히 동의합니다. 제가 자세히 모르는 한국형 해커의 스토리들이 분명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 시대에 단절된게 너무 아쉬울 뿐이고요… 서상현님께서 블로그나 책으로 한번 소개시켜 주시면 좋을것 같네요 ^__^.

    • 답글 감사드립니다. 좀 더 명확히 말씀드리면 본 글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건 대략 두가지 였습니다.
      1.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개념의 일관성 (Conceptual integrity) 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개념의 일관성은 한명 혹은 소수의 인물로만 창조 / 유지된다.
      2. 해커는 밑바닥에서 다져진 개념으로 영웅이 된다.

      글의 재미를 위해 소수의 그리고 알려진 큰 회사 위주의 성공 사례를 적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영웅은 꼭 비지니스를 성공 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덜 알려진 제임스 고슬링 같은 사람은 제겐 영웅이니까요. 그리고 소프트웨어 시장이 넓어지면, 각각의 분야를 개척하는 아주 많은 수의 영웅이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그게 실리콘벨리고요).

      굳이 글을 쓴 이유는 영웅이 나올 수 없는 우리 풍토 — 재벌 위주의 산업과 아웃라이어를 혐오하는 사회 — 를 뒤돌아보고자 했던 겁니다. 말씀하신대로 뛰어난 한국 해커들이 영웅이 되지 못한 것은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것일수 있고요. 대학생들이 아예 영웅의 꿈을 꾸어보지도 않는 사회엔 전 소프트웨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글 주신걸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웅이 풍토와 관련이 있을런지는 생각해볼 문제 같습니다. 영웅이라면, 어떤 특정 시스템에 의해서 교육되는 혹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요? 위인전에서 수없이 읽었듯이 어떤 환경이든지 역경을 극복하고 되는 것이 영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역경이 많은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되려 영웅이 나올 환경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는 용어가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견입니다만, Conceptual Integrity는 성공적인 프로젝트 – 혹은 한사람이 매니지 가능한 수의 프로젝트에 매진하는 회사? – 를 위한 요소이지 위에서 예를 든 인물들이 만든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요소로 생각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프로덕스 개념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회사의 매니징을 합친 개념이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CEO가 마이크로매니징하는 예가 Conceptual Integrity의 근거가 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애플은 누가 이야기해도 특이 케이스라고 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렇지 않고 성공한 회사가 훨씬 많지 않을까 생각되구요. 회사가 클수록 성공/유지는 한 개인의 요소보다는 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 남긴 System 혹은 Culture같은 것의 영향이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 저 또한 Culture의 중요성엔 100% 동감입니다. 저희 CEO가 항상 강조하는게 “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 입니다.. 하지만 culture 는 조직에 속한 개인의 동기부여(motivation) 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시스템과 비전의 integrity를 유지하는 것은 창업자 혹은 소수의 아키텍트의 mind 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 창업자들이 밀어 붙인 Gmail이 처음 1G, 그 당시로는 상상할수도 없는 저장공간을 개인들에게 준다고 했을때, Steven Levy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빌게이츠는 펄쩍 뛰면서 물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공간에 무얼 채우려고 하냐고? 그리고 곧 쓸모없는 짓이라고 단정합니다. PPT나 word등 자료를 아무리 넣어도 그 공간은 채울수 없다고 하면서…..PC 시대 영웅 빌게이츠도 웹 시대 영웅들의 Conceptual integrity 를 이해못한 거지요…

  13. 한명의 천재가 끌고가다 망하고 다른 천재가 이어가는 것(망하진 않더라도 새 아이템으로)과
    의사결정자가 주기적으로 바뀌더라도 천재인 것과 다른가요?
    같다면 지금도 그렇습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그렇습니다.
    당장 젊은 의사결정자가 적고 비전없는 사람들이 경영자로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여러모로 사회의 부조리(비리, 유착 등…)의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투기에 돈이 몰리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무 발달해도 고칠 수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최강국인 미국도 얼마나 많은 투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아마 미국도 IT 벤처에 투자되는 금액은 우수울 정도로 투기에 투자되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단지 국내 금융규모가 작아서 더 아쉬울 뿐이죠.

  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첨언하자면 해커의 Conceptual Integrity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그러한 concept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존중할 줄 아는 문화에서 나오는 거겠지요. 즉 무형의 것의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거기에 돈을 지불할 줄 아는’ 문화적 기반이 실리콘 밸리 성공의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5. 조건 나열하신 점이 명쾌하여 잘 읽고 갑니다. 아웃사이더 용납 못하는 제조업마인드 우리나라에서 잉여 조건 펼쳐질 그날을 기대해봅니다. 미국은 21세기 되기 전에했으니 우리나라는 21세기 중반쯤에라도 가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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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상민님의 글은 항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합니다.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교차합니다.
    그 중 가장 주된 감정은 분노와 희열이네요.
    시민권자가 되시어 더욱더 실명을 거론하며 직접적으로 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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