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들

오랜만에 폴 그레이엄의 짧은 에세이를 읽고 동감이 되어서 번역해 봅니다.
적성,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 http://paulgraham.com/wo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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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수학자였다. 내가 어린시절 내내 아버지는 Westinghouse사에서 핵융합 모델링을했다.

아버지는 어릴적부터 무엇을 하고싶은지 알았던 운좋은 사람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때마다 “12살때쯤 수학에 관심이 생기던 시절”이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영국령 웨일즈 지방의 Pwllheli라는 작은 시골에서 자랐다. 우리가 구글 스트리트뷰를 사용해 아버지의 어린 시절 시골길을 다시 찾아봤을때 그는 시골에서 자란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15살쯤 되면 시골이 지겹지 않았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 아버지가 말했다. “그때쯤에 나는 수학에 푹 빠져있었거든.”

다른날엔 아버지에게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들었다. 내게는 수학책의 챕터 마지막에 있는 문제리스트 (exercise)는 항상 “일”일 뿐이거나 좀 더 좋게 말해도 챕터에서 배운것을 다시 복습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겐 그 문제들이 일종의 보상(reward)이었다. 챕터의 내용들은 그저 문제를 푸는데 도움을 조금 주는것들 뿐이다. 아버지는 수학책을 받자마자 챕터 마지막의 모든 문제들을 다 풀었고 책의 진도를 조금씩 나가야 했던 수학 선생님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버지처럼 일찌감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게된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적성찾는 한가지 알고리즘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처럼 보이는 것이 당신에게는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당신의 적성이다. 예를들어 나를 포함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투덜대면서도) 사실은 디버깅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디버깅을 스스로 찾아하는데 그게 사실 자원해서 할만큼 그렇게 즐거운 성격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드름 짜내며 희열을 느끼는것처럼 디버깅을 좋아한다. 그런데 프로그래밍에 디버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따져보면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려면 디버깅 역시 좋아해야만한다.

당신의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느껴질수록 그 취향이 당신이 계속 해나가야할 적성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대학교때 친구들 대신해서 수업 논문들을 써주곤했다. 내가 듣지도 않는 수업의 논문을 쓰는게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친구들 역시 아주 좋아했고…

내게는 그렇게 즐거웠던 일이 다른 사람에겐 고통스러울수 있다는게 흥미로웠지만 이러한 상호간 인식 차이가 무슨 의미인지는 그당시에 잘 몰랐다. 누군가에겐 자신이 어떤 적성이 있는지를 찾고 결정하는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란걸 알지 못했다. 미스테리 소설의 탐정이 사건을 해결해가는 것처럼 그런 미묘한 단서들을 통해서만 한 사람의 적성을 찾을수 있다는걸 지금은 안다. 그래서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는것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일처럼 느끼지만 당신에게는 일이 아니었던 (즐거움이었던)것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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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초등학교 MS-DOS 시절엔 PC게임 하나를 돌리는데 많은 해킹이 필요했다. 게임 디스켓을 친구들에게서 빌릴때면 공책 한장을 부욱 찢어 게임을 실행하기 위한 도스 커맨드를 빽빽하게 함께 적어가야했다. 하지만 커맨드를 따라해도 안될때가 많아 다음날 다시 다른 커맨드를 적어와실행하고를 반복했다. 며칠간 커맨드라인과 설정을 바꾸어가며 게임을 실행해보려고 노력하다 드디어 도스의 까만 텍스트창이 사라지고 화려한 그래픽이 모니터를 가득 채울때면 그 희열은 이루말할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은 몇분 해보다가 재미가 없어 끄고 말았다. 친구들은 재밌다고 난리인 게임들을 이런 식으로 실행만 시켜보고 끝내곤 했다. 사실 그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게임을 실행하기까지의 반복되는 설정, 도스 커맨드라인 그리고 이런 디버깅을 마쳤을때의 희열이 내겐 “일”이 아닌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내게도 프로그래밍은 천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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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터뷰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메일 인터뷰를 부탁받았습니다. 요즘 블로그를 잘 못하는데 이왕 시간 들여 쓴김에 한번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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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이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SW엔지니어로 활동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일하는곳은 실리콘밸리가 아니고 시애틀입니다. 회사는 실리콘밸리가 본부지만 저는 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이유입니다. 미국에서는 SW엔지니어 직군의 평균 급여가 의사, 변호사를 제외하고 가장 높습니다. 흔히 억대연봉이 직장인의 꿈이라고하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23살의 새내기가 억대연봉으로 입사하는것이 아주 흔한 일입니다. 제 주변에 30대 부부가 SW엔지니어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둘이 합쳐 연봉 30만불 (약 3억원)이상 받는게 일반적입니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고하는 —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이민자가 가장 빠르게 미국의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 일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직업이 SW엔지니어입니다.

둘째는 자유로운 근무환경입니다. 저는 현재 약 3년넘게 사무실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6개월에 한번정도 캘리포니아의 사무실에 갈때가 있지만 회사일은 집에서 제가 원하는 시간에 합니다 (현재 HP에 인수된 저희 스타트업 회사 유칼립투스 시스템즈의 70% 직원이 집에서 일을 했습니다). 집에서 일하기때문에 누구에게 감시받을 필요도 없고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낮시간에는 아직 어린 아이들과 놀거나 집근처 골프장에 나가고 밤시간에 일을 하는 때도 많습니다.

셋째는 회사선택의 자유입니다. 어느 회사든 몇년간 일하고 나면 업무가 지겨워집니다. 특히 기술의 진행이 아주 빠른 SW세계에서는 한 기술만 계속 붙잡고 있으면 쉽게 퇴보하고 맙니다.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에는 SW엔지니어가 선택할 수 있는 회사들이 정말 많습니다. 도전적인 일을 하고 싶으면 스타트업 회사에 문을 두드릴 수 있고, 좀 더 좋은 보수와 복지를 원하면 대기업에 몸담을 수 있습니다.

2. 실리콘밸리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계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하며 그런 생각을 품었습니다. 공부하면서 교과서, 논문에 나오는 소프트웨어들을 직접 설치 사용해보고 소스코드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중요한 SW를 만드는곳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찾을수 없었습니다. 학교들마다 논문은 많이 쓴다고 하는데, 전공이 컴퓨터이면서도 가치있는 SW는 하나도 개발하지 못하는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원에서 그당시 떠오르는 분야였던 ‘그리드’ 컴퓨팅 SW를 만들어보려고 이곳 저곳 다른 학교 컴퓨터도 빌리고 학생들끼리 모임도 가지곤 했었습니다. 실제 어설프게나마 동작하는 SW를 만들고 논문도 냈지만 한국은 오로지 ‘논문’ 과 정부 발주의 ‘프로젝트’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관련 내용은 링크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장관님 코딩은 좀 하십니까?)

어떻게 SW를 잘 만들수 있을까 이야기하는 ‘논문’은 써내면서 실제로는 SW를 만들 생각도, 능력도 없는것이 한국의 모순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유학하고 일하게 되었습니다.

3. 한국 SW엔지니어들이 희망을 가지려면 어떠한 점이 먼저 해결돼야 할까요? 중요한 순서대로 세가지를 들어주시고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1번의 답과 비슷합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처우입니다. 한국의 SW엔지니어도 미국처럼 고소득의 급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다른 이유는 한국의 SW업계는 그만큼 매출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 SW를 사용하는지 관찰해 보면 SW가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큰 가치를 생산해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가치를 돈으로 연결시켜 ‘떼돈’ 버는 SW회사가 많이 생겨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여러가지 제약이 있고 그중 정부의 규제가 큰 ‘악’중 하나입니다. SW 업체가 돈을 버는 방법은 기존의 시스템중 불편한 부분을 발견해서 SW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부분에 SW가 들어가면 기존 시스템에는 변형이 가해지게 됩니다. 얼마전 ‘우버’가 불법택시라고 한국에서 낙인 찍혔습니다. 택시라는 운송시스템의 불편한 부분을 ‘우버’는 SW로 해결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의 택시 시스템은 크게 변형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형’을 미국에서는 ‘혁신’이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불법’이라고 부릅니다. ActiveX, 핀테크, 드론등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들에서 정부는 ‘불법’을 막아내려고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것을 보면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습니다.

둘째로 연공서열의 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SW개발자는 능력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퍼포먼스 차이가 10배 이상 나기도 합니다. 최근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약 2조 5천억에 샀습니다. 2.5조원짜리 게임 SW의 대부분을 창업자 한 사람이 프로그래밍 했습니다. ‘리눅스’라는 운영체제는 구글, 페이스북등 전세계 거의 모든 회사들에서 사용됩니다. ‘리눅스’는 리누스 토발즈가 몇개월간 집에서 혼자 만들어 시작되었고 현재도 그가 모든 개발을 지휘합니다. 연공서열의 문화에서는 이런 영웅담이 나올수가 없습니다. 1년차 말단직원으로 시작해 20년 지나야 부장, 임원이 되는 경직된 구조에서 10배, 100배의 퍼포먼스를 내는  천재들이 어떻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10배의 퍼포먼스를 내는 1년차 직원이 있다면 10배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회사와 기술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SW엔지니어가 안정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회사는 삼성, 네이버등 몇개의 대기업, 인터넷 기업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3년에 한번씩 회사를 옮기면서 본인의 흥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하다보면 모든 회사를 한번씩 다녀보고 더 갈곳이 없어 치킨집을 차려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에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그중 성공하는 업체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카카오톡’ ‘네이버’같은 회사들이 100개쯤 생겨나야 SW엔지니어들이 마음껏 활동할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겁니다.

4. 실력으로 평가받는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한국인 SW개발자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한국SW 개발자라고 하면 현지 기업은 어떠한 평가를 내리는지 진솔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주변에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등 여러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봤을때 모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어디에 가든 부지런하다고 평가 받는데 이건 SW개발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지런히 맡은 일 잘 해내는 사람들이 한국 SW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실함’은 장점이면서 또한 한계이기도 합니다. 큰 회사의 리더로 올라가거나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성실함’에 더해 ‘창의력’, ‘리더쉽’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를 포함해 한국 개발자들이 약한 부분입니다. 큰 소리 내지않고 맡은일 하는것을 미덕이라고 배워온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남을 설득하는 미국식 문화에 적응하는것은 쉽지 않습니다. 주어진 문제는 잘 해내지만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창의적인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5. 얼마전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서 발표하신 내용 중 `잉여’와 `공포’라는 단어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단어들이 지칭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것들인지 다시한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등 거의 모든 SW회사는 잉여의 결과물입니다. 즉 본업이 있는 학생이나 직장인이 본업과 상관없는 취미생활에 몰두해 SW를 만들고 이것이 시대의 변화에 맞물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입니다. 미국에서 천여명 남짓되는 사람들이 처음 PC를 취미삼아 사용했을때, 빌게이츠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PC에 올라가는 SW를 만들고 배포했습니다.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작입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기숙사에서 여학생들을 스토킹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고 이것이 페이스북의 시작입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은 PC동호회에서 처음만나 취미로 PC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성공적인 SW는 ‘잉여’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분위기가 다릅니다. 끊임없이 정부와 언론에서 소프트웨어가 위기라는 ‘공포’심을 조성하며 SW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삼성이 SW가 없어서 망한다’, ‘외산 SW가 한국을 장악하려 한다’는 등의 공포심 조성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준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이것이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는 적용되었을지 모르지만 SW는 그런식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많은 돈과 인력을 들이며 “SW도 해내자”고 해왔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것 역시 같은 이유입니다. “공포심” “체계적인 계획”은 성공적인 SW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취미생활에 몰두한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성공적인 SW를 만들수 있습니다.

나쁜놈들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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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장 재미있던 한국 영화중 하나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였다. 영화가 특별히 재미있었던 이유는 예전 어린아이의 눈으로 목격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다시 재현했기 때문이다. 내가 초중고 학생으로 살았던 80-90년대는 정말로 <나쁜놈들 전성시대>였다. 조폭들만 나쁜놈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최민식이 그렸던 공무원, 경찰, 회사원들이 일상속에서 저지르는 자잘한 비리들은 그 시대엔 생활의 일부였다. 과속 단속에 걸리면 1만원짜리 한장 쥐어주는 것으로 넘어갔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고 돌아올때면 엄마들은 하얀 봉투를 책속에 꼬옥 넣어 건네야했다. 우리 동네에는 한국에서 그당시 샐러리맨으로 살았던 분들이 여럿 계시다. 이 분들의 샐러리맨 <활약상>들을 들을때면 흥미진진하다. 대기업 말단 사원을 불러 수백만원짜리 양복을 맞추어주던 하청업체의 접대와 고스톱판에서 잃어주는 돈으로 은근히 전달하던 뇌물 이야기등등. <그땐 참 모두들 나쁘게 살았지…> 이렇게 말끝을 흐리시는 추억담을 듣곤 한다.

대학교 버전의 <나쁜놈들 전성시대>역시 크게 다를바 없다. 용돈으로 나오는 몇십만원 월급을 고스란히 교수님에게 상납해야 했던 대학원생들 사이에선 다양한 <학교 전설>들이 구전되었다. 해외 연수를 가면 학생들의 여행경비를 압수해 가족의 동반 여행에 여비로 활용하던 사람도 있고, 연구 장비로 책정된 예산으로 본인 집 냉장고 산 교수의 이야기는 전설중 레전드였다. 신임 교수자리가 나오면 모집 요강의 내용까지 바꿔가며 자기 사람을 불러주고, 신임은 선배의 은혜가 고마워 교수 계급사회의 아래에서 묵묵히 선배 교수에게 프로젝트, 논문의 한자리를 상납하곤 했다. 계급의 맨 바닥에 깔려있는 대학원생은 자기가 쓴 논문의 앞자리 이름을 지도 교수에게 양보하면서 <내가 졸업만 해봐라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싼다> 다짐을 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조폭들에겐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다면, 부패한 학교들에게 가해진 조치는 <규칙>과 <정량 평가>다. 교수를 임용할때 돈이 오가거나 선후배 끌어주기가 심하다는 지적에 <오케이, 그럼 신임교수 뽑을때나 교수 평가할때는 SCI 논문 갯수로만 합시다> 하면 깔끔한 승부가 이루어질거라 생각했다. 교수들이 연구비를 임의 전용한다면, <오케이, 그럼 연구 제안서에 회식비등 짜잘한 항목까지 정확하게 적게 하고 나중에 다 영수증을 검사합시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경찰과 검사가 활약했다면, 학교에는 이렇게 <규칙>과 <정량평가>라는 객관적인 감시자를 붙여놓았다. 국가에서 SCI라는 규칙을 정하니 학교들은 군말없이 잘 따른다. 아니 사실은 잘 따르는게 아니라, 새 규칙에 잘 적응해가는 것이다. 프로젝트 제안서에는 몇개의 SCI논문을 쓸것인가 약속해야 한다.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해서 몇편 이상의 SCI 논문을 써내야 한다. 둘다 논문의 품질은 상관이 없다. 그게 이 바닥의 새로운 룰이니 최민식이 그랬듯 적응하는자가 살아남는다.

그런데 문제는 SCI 논문이라는 이 기준이 어떤 분야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전공하고 일하는 컴퓨터 과학 (혹은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SCI 논문으로 연구를 평가하는 것은 정말 <불 쉿>이다. 그냥 <불 쉿>이 아니고 진짜 큰 소의 <불 쉿>이다. SCI는 책으로 발간되는 논문집말고 컨퍼런스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분야의 발전 속도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연구 결과들을 대부분 컨퍼런스에서 발표한다. 단언컨데 컴퓨터 연구계의 <일진>들은 SCI로 분류되는 논문집에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다. 심사하는데 1-2년 소비하고 학회지에 논문이 출판되면 이미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버리고 마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보자. SOSP와 OSDI라는 두개의 학회는 운영체제, 시스템 분야에서는 넘사벽의 학회다. 매년 백편 이상의 논문이 제출되지만 약 20편 정도만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다. 그렇게 논문을 제출해보기라도 하는 학교들이 보통 MIT, Berkeley, CMU 와 같은 곳들이고, 평범한 미국의 주립대학들은 사실 논문을 내 볼 엄두도 잘 못낸다. 두 학회에서 논문을 한편이라도 발표한 사람 만나면, 이 바닥에서는 형님대접 해드려야 한다. 미국의 아무 학교에 지원서를 내도 서류 심사에서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두 학회에 논문을 10편을 쓴 가공의 인물이 있다고 하고, 이 사람이 정신이 나갔는지 한국 학교의 교수 임용에 신청서를 냈다고 해보자. 하지만 이 사람은 SCI 점수가 0점이라 서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 어디 아프리카에서 발행되는 학회지라도 SCI에 낸게 있는 사람보다 낮게 평가받는다. 이거 말고 더 큰 <불 쉿>이 어디있단 말인가?

나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중 2008년에 <슈퍼컴퓨팅> 컨퍼런스라는 곳에 논문을 냈다. OSDI, SOSP까지 수준은 아니지만 내 분야에서는 최고이고 컴퓨터과학계에 가장 유명한 컨퍼런스중 하나다. 그런데 소가 뒷걸음치다가 개구리 밟듯 운이 좋았는지 <최고논문상> 후보에 올랐다. 내공이 모자라 상은 받지 못했지만, 후보에 오른것만으로 자랑할만한 성과다. 컨퍼런스의 경쟁률이 5:1 정도 되고, 약 30개 논문중 4편이 후보에 올랐으니 40:1 정도의 경쟁이었을 것이다. 그 이듬해 한국에 갈일이 있어 모교에 들렀다. 예전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던것 같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나: <교수님 저 이번에 이런 논문 썼습니다…>
교수님: <응.. SCI를 써야 해.. 한국에 교수로 오고 싶으면 SCI를 써야지 아님 서류심사에서 통과를 못해>
나: <미국 학교들에선 SCI에 안내는거 아시잖아요…>
교수님: <으응..나도 알고 과에서도 알지.. 근데 규칙이야.. SCI를 써야 해..>

SCI도 쓰면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과에서는 전혀 아니다. 허접한 SCI 학회지들에 일년에 몇개의 논문을 내기 위해선 <일진> 수준의 연구는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일진> 수준의 연구를 하기위해선 <일진>들이 노는 물에 가서 놀아야하는데 그 사람들은 SCI에서 놀지 않는다. 사실 미국의 컴퓨터과 교수들은 SCI라는 평가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졸업을 2년정도 앞둔 내게 선택은 <한국에서 교수하고 싶으면 타협하고 SCI 방식으로 연구하거나> <진짜 일진이 되고 싶으면 SCI는 무시하고 수준있는 학회들에 논문을 내거나> 둘중 하나였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게 옳다 여겼다. 주변에 전자를 선택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똑똑해서 일진될 재목같았던 분들이 전자를 선택할때는 좀 안타까웠다.

내가 가장 <불쉿>이라고 느끼는 것은 <응 나도 알고 과에서도 알아. 근데 규칙이야> 이 대목이다. 몇해 후 모교를 방문해서 다른 교수님과도 대화를 나눴다. 나이 지긋하시고 학교에서도 파워 있으신 교수님 역시 같은 이야기 <자네 발표 잘 하던데…SCI는 좀 썼나?.. 나도 알고 과에서도 아는데…규칙이라서…>. 컴퓨터과의  얼마나 많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이 멍청한 규칙에 세계적인 연구자 되기를 포기해야하는지 모른다. 교수도 알고, 학교도 알고, 심지어는 교육계의 관료도 문제를 안다고 생각한다. 부패를 막으려고 만든 규칙이 독이 되어 개인과 시스템을 서서히 죽이는걸 알지만, <근데 규칙이라서…>를 위선적으로 대뇌어야 한다면 얼마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이것이 단순히 학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SCI 못지않은 초대형 불쉿 <공인인증서>를 보자. 1999년 막 인터넷이 한국에 보급되면서 제정된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수없는 국가 <공인인증서>. 본래는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국민들에게 해커들의 헤꼬지를 막아주려한 선한 의도의 <규칙>이다. 지금껏 15년 세월이 지나는동안 인터넷 기술은 완전히 달라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인인증서 불쉿>을 외쳐왔는지 모른다. 공인인증서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수백만건의 개인정보는 유출되고 있다. 오히려  공인인증서의 본 의미도 모르는채 무조건 클릭하게끔 사람들을 적응시켜 보안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인터넷 회사들의 결제 과정에 등장해서는 사용자 경험(UX)을 똥칠해 버리지만, 법률이라 스타트업, 인터넷 기업들이 혁신할 기회가 없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아마존이 <원클릭>이라는 인터넷 상거래의 혁신으로 전 세계를 먹어가고 있는데도, 아무리 목이 터져라 <공인인증서 불쉿>이라고 외쳐대도 변화가 없다. 늘 되풀이된다. <공인인증서가 아닌건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근데 규칙이야>. 

법은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어쩔수 없이 발휘돼야 하는 필요악이다. 우리는 사회가 성장하면서 겪은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질린 나머지 <너도 알고, 나도 아닌걸 알지만 어쩔수 없는 규칙>의 노예로 살고 있다. 교수들의 양심을 믿고 SCI 규칙을 풀었다가는 학교들이 또 부정하게 신임 교수들을 뽑을까봐서. 교수들의 연구 관리를 자유롭게 풀어주면 또 세금으로 자기집 냉장고 살까봐. 국민의 인터넷 실력을 믿고 공인인증서 규칙을 풀었다가는 전부 해킹당할까봐서. 그래서 아무리 <불쉿><불쉿>대도 규칙을 풀지 않는다. 그 사이 학교와 인터넷은 세계에서 경쟁력을 잃어가지만, <나쁜놈들>의 기억이 얼마나 강력한지 좀체로 자유를 허락치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개개인은 훨씬 더 많이 발전했는지 모른다. 급격한 성장의 마약에 취해 한때 양심을 잊은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나은 직업적 양심, 소명,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양심에 의한 자율이 다스리는 사회가 법치국가보다 훨씬 더 나은 곳이다.

박상민 / https://twitter.com/sm_park

인터뷰의 질문과 답

얼마전 제게 소프트웨어 개발과 오픈소스에 대해 인터뷰를 부탁하셔서 평소 생각을 말씀 드렸는데 여러 사람들 의견을 모아 책으로 출간이 되었네요. http://jpub.tistory.com/366

인터뷰의 질문과 답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블로그로 공유합니다.

Q: 중국, 인도, 영국 등에서 코딩교육을 의무화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조심스럽게 프로그래밍을의무교육-입시화 하자는 얘기가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10만 SW인력양성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조기에 SW를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든지, 정책적 차원에서 SW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본적으로 어린 나이에 코딩을 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져커버그는 아주 어려서부터 프로그래밍을 했고, 12살 나이에 이미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메신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져커버그의 관심을 파악한 부모는 코딩 과외를 시켜주기도 했습니다. 트위터를 만든 잭 도시, 텀블러의 데이빗 카프등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 창업자들은 초등학교, 늦어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좀 더 빠르게 접해서 단지 더 많이 배우게 하거나, 코딩을 아주 잘하는 기술자로 만드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코딩을 시작하면, 주변에서 접하는 사소한 “문제(Problem)”들을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즉, 져커버그가 아버지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시키는 메신저를 만든 이유는, 아버지와 가족이 일하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문제 해결”을 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인식하던 결과물이 훗날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해결한 페이스북입니다. 어른, 특히 대학교 이후에 직업을 위해 코딩을 배운 사람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이런 문제들을 발견 못합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중 “문제”를 처음 발견하고 그걸 해결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네이버는 구글이 발견한 문제를, 삼성은 애플이 발견한 문제를, 다음은 야후가 발견한 문제를 자신들 역시 해결한 것 뿐입니다.  흔히 창의력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문제를 발견하는 눈이 없다는 뜻입니다.

프로그래밍 조기 교육 주장의 문제는, “10만 SW인력 양성론”에서 드러나듯 그 목적이 단지 많은 기술자를 양성하려 하는데 있습니다. 기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학교 교육으로 충분합니다. 절대 프로그래밍은 어려서부터 배워야할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목적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문제들을 파악하는 감각을 기르기 위함이고 따라서 커리큘럼등이 이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Q: 오픈소스 관련 한 벤처대표는 오픈소스는 공짜라기보다는 ‘자유’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참여와 공유를 강조하는 측면입니다. 박상민 연구원님은 블로그에서 “오픈소스가 한국 SW의 근본적 해결”라고 적으셨습니다. 국내에서는 안타깝게도 FTA 이후 오픈소스 관련 분쟁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오픈소스 거번넌스 체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오픈소스의 본질(가능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현실에서 오픈소스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오해와 곡해를 통한 저작권 침해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그 대표분 말씀대로 오픈소스는 공짜가 아닙니다. 저희 회사 Eucalyptus systems는 모든 소스코드를 github을 통해서 공개하지만,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배포합니다. 저희 회사 CEO는 그 전 오픈소스 회사 MySQL을 1조원 넘는 가격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흔한 질문이 “소스 코드를 공개했는데, 왜 내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부분입니다. 답은 “소스코드는 소프트웨어의 단지 한 부분” 이라는 사실입니다. 코드이외에 실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기 위해선 다른 기술들 (패키징, QA)과 고객 서비스 (24시간 콜센터등)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픈소스 제품을 사는 사람들은 소스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픈소스 회사의 모든 서비스를 구입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서비스를 구입하지 않고 소스코드만 가지고 스스로 패키징, QA, 서비스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저희 CEO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시간을 절약하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많아서 돈을 아낀다”고 합니다.

오픈소스는 두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문화적인 측면입니다. 미국에 끊임없이 소프트웨어 회사가 생기고 회사들이 빠른 시간에 성장하는 이유는 저변에 셀수 없이 많은 오픈소스 해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PC를 취미로 만들고 공유하던 동호회에서 시작한 회사가 애플입니다. 리누스 토발즈는 주말에 시간내서 소스코드 관리툴 git 을 만들었는데, 그 툴을 좋아한 젊은이 둘이 웹 버젼으로 만든 github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스타트업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취미로 만들고 코드를 공개한 소프트웨어가 참여, 공유를 통해서 스타트업, 대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가 빠른 시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개발자가 많아야 하는데, 오픈소스 문화가 그런 고급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줍니다.

두번째는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입니다. 최근 몇년사이에 미국에서는 <스타트업은 오픈소스 해야 한다>는게 일종의 불문율입니다. 이유는 주 구매층인 중견 기업, 대기업들이 이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몇십년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등에 종속(lock-in)되어서 어쩔수 없이 많은 지출을 해야 했는데, 이제는 Linux, MySQL등  품질은 비슷하지만 적은 비용으로 소프트웨어를 운영하는 대안을 선택합니다. 80년대-2000년대까지는 소프트웨어의 “품질”이 최고의 요구사항 이었다면, 품질에 차이가 거의 없는 지금은 “자유”, “선택”이 소프트웨어 구매의 최고 요구사항입니다. 코드를 직접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구매하지 않고도 소프트웨어를 운영할 수 있는 오픈소스가 이기는게 당연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성공적인 오픈소스 회사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래머들에게조차 오픈소스는 괴짜들이 하는 취미 정도로만 인식되는게 현실입니다. 오픈소스는 취미일뿐 아니라 성공적인 기업 모델입니다. 오픈소스의 전도사 역할을 할만한 회사가 대기업 가운데서도 나와야 하고, 스타트업중에도 성공하는 회사가 있어야 합니다. 법, 제도적으로는 기반이 없는 지금 그런 회사들을 띄워줄 (Bootstrap)만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블로그에 보면 ‘제큐어웹(XecureWeb)’으로 인한 한국 보안 인증체계의 문제점을 언급하셨습니다. 외국에 비해 국내 보안 체계는 매우 복잡하고, 사용자에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한국과 미국 보안 인증 체계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A: 질문과는 반대로 사실 가장 큰 차이는 미국은 사용자에 책임을 지우는 반면, 한국은 정부가 사용자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주 강합니다. 미국의 경우 예를들어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면 클릭 한번 하는 것으로 결재가 끝납니다. 구매의 전 과정에서 정부가 규제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 정부가 사업체에 보안 인증을 강제하니까 제품을 한번 구매할때마다 ActiveX,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등을 강제로 설치해야 하죠.

정부의 의도가 완전히 잘못 되었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컴맹이고 나이 든 분들께는 보안을 강제 하는 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보안과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꼭 밸런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지나치게 국민을 신뢰 못하는 나머지 보안쪽에 너무 큰 무게를 두고 사용자 경험을 무시했습니다. 웹기업 들이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뛰어난 사용자 경험이 정부에 의해 근본적으로 막힌 것입니다. 보안, 인증 체계는 기업들이 만들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더 나은 보안 체계를 갖춘 회사들이 시장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모든 보안의 키를 쥐고 있으니까 오히려 기업들에서는 보안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더 위험한 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정부 규제는 보안에서, 사용자 경험면에서 모두 실패입니다.

Q: 정부 주도의 진흥 혹은 규제보다는 서비스 사용자 중심의 시장에 의해 성공하는 SW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바람직한 SW정책 혹은 SW정책의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더불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인정받고 스타트업이 시장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판단하십니까?

A: 이미 크게 성공하고 있는 카카오톡, 라인등에 정부가 한 역할이 조금이라도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과정에서 대기업등에 의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 해주는 역할 정도가 정부가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창업자들이 빛을 지거나 신용불량이 되는 등 사업의 결과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잃을것이 너무 많은 환경에서 누가 시작을 하겠습니까?

정부 보다는 스타트업으로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투자자, 멘토 역할을 해서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유명한 벤처기업가 폴 그레이엄은 자신의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후 YCombinator를 만들어 매년 수십팀의 스타트업에 초기 자금을 지원하고 멘토링을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드랍박스, AirBnB와 같은 걸출한 스타트업들이 나왔고 수십조원 가치의 회사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구글 창업자 둘의 가능성을 보고 맨 처음 몇억을 투자 했습니다. 우리 역시 성공한 사람들에 의해 다시 투자 되는 벤처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최근 모바일 생태계 조성을 위해 100억 투자를 약속한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좋은 예입니다.

정부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소프트웨어 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문화의 핵심은 오픈소스 입니다. 취미로 주말에 코딩을 하는 학생들, 직장인들의 수와 국가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정확히 비례할 것입니다. 학교, 기업들에서 적극적으로 오픈 소스를 도입하고 개발하도록 정부가 지원을 해야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오픈 소스는 문화이면서 또한 강력한 경쟁력입니다.

Q: 이번 책의 컨셉이 ‘SW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SW의 성공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는지요? SW로 성공한다는 것(개발자들의 입장에서)과 SW가 성공한다는 것(제품 혹은 서비스의 입장에서)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마지막으로 사례를 포함해서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개발자의 입장에서 SW로 성공하는 것은 직업이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개발일을 하며 힘들어 하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많이 봅니다. 이것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SW를 개발하는 과정은 즐거움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직업으로 코딩하는 그 시간만큼 저녁이나 주말에 프로그래밍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창조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중독성이 강한 즐거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아주 성공한 사람들 (예를들어 폴 그레이엄)이 나이 들어서도 코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개발자들은 의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직군입니다. 매일 놀이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마도 SW 개발자들만 누리는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의 설명에서 한가지 빠진 조건은 “능력있는” 개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발을 즐거워 하는 정도와 능력은 정확히 비례합니다. 프로그래밍을 싫어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은 한번도 못 보았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학생이거나 해서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집니다. 이것이 개발자의 성공이라 생각합니다.

제품/서비스 입장에서 SW가 성공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제품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점 한가지를 해결한 것입니다. 구글은 “알고 싶다”, 아마존은 “사고 싶다”, 페이스북은 “친하고 싶다”, 트위터는 “말하고 싶다”는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해결하는 고통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서비스는 더 크게 성공합니다. 구글이 해결한 “알고 싶다”의 문제의 깊이와 현재 구글의 300조 주식 가치는 정확히 비례합니다. 아마도 트위터가 절대로 구글보다 커질 수 없는 이유는 “말하고 싶다”는 본능이 “알고 싶다”는 욕구보다 더 작기 때문일 것입니다.

앱스토어에 출시된 수십만개의 앱들 대부분이 가치가 없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만 사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중의 아주 소수 앱들만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성공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하고 상상속에서 문제를 만들어내 SW로 해결합니다. 제프 베조스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고 고통이 큰 문제 (싼 가격에 물건사서 빠르게 받는것)를 해결합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트위터, 블로거, 미디움 세개의 서비스를 연속해 성공시킨 에반 윌리엄스는 사람들의 공통된 문제중 하나를 골라, ‘기다리기 싫어함’, ‘생각하기 싫어함’ 두가지만 SW로 해결해주면 스타트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SW의 성공은 고통의 정도가 큰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만드는 SW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은 SW개발하는 과정 만큼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https://twitter.com/sm_park

Let it go

“An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 Arthur Clarke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 아서 클라크

frozen_elsa-wide

2014

오늘 블로그의 첫 배경 사진은 영화 프로즌의 여왕 <엘사>다. 2014년의 첫 글 치고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지만, 오늘은 영화에서 느낀 비전(꿈)에 관한 내 감정을 일기처럼 표현해 보고 싶었다. 이런 글은 영화를 아직 못 본 분들껜 공감이 어려울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가 이야기 했듯 블로그의 제1 가치는 미래에 다시 이 글을 읽을 내 자신이라 생각하고 ([1]) 그냥 표현해보기로 맘 먹었다.

2014를 맞이한 지금 이순간, 나는 참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한 이유는 예전의 블로그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2] 에서 이야기 했듯 대학 시절에 가졌던 꿈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력 쟁쟁한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삼줄 추리닝에 샌달 신고 다니며 신나게 코딩하는 것은 지금 매일 매일의 생활이 됐다. 예쁘고 착한 아내와 두 딸이 주는 가정에서의 안정감과 기쁨 역시 참 좋다. 집에서 하고 싶은 코딩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처럼만 늙어간다면 인생이 아마 썩 괜찮을 것 같다….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가 않다. 마음속 한 공간엔 감정으로는 느껴지는데 말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블랙홀같은 공간이 있다. 불행함으로 표현한 그 공간에 비어있는 것은 <비전><꿈>이다. 10대때는 좋은 대학을 가는게 꿈이었고, 20대때는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게 꿈이었는데, 이제 30대는 절반이 이미 지났는데 무슨 꿈을 꾸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끝없이 전해지는 SW 창업자들의 성공 스토리는 운좋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비전은 단어 뜻 그대로 무엇인가를 <눈으로 목격>하는 것이다. 10대때는 활기넘치는 대학생들, 20대에는 자유분방한 미국 프로그래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이번에는 뜻하지않게 딸 아이들과 영화 <프로즌>을 보며 또 한번 <비전>이 주는 강렬한 비쥬얼 효과를 느꼈다. 내가 “<프로즌>의 주인공같은 여왕이 되리라”고 마음먹은 것은 물론 아니다. 애니메이션 곳곳에 드러나있는 은유들 속에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꿈꿔야 하는 것들을 찾았다는 뜻이다. 사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영화가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알지 못했다. 일주일 내내 가슴이 벅찬 느낌,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천천히 내용을 곱씹어보고 YouTube 영상을 여러번 보고 나서야 <프로즌>이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스케치해뒀던 다음 단계의 <비전>을 강력하게 시각화했음을 알았다.

프로즌

프로즌의 주인공 <엘사>는 손에 닿는 모든것을 얼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갖고 태어났다. 마법은 아름다운 눈송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들을 다치게하는 저주가 되기 때문에 <엘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장갑을 손에 끼우고 살아야만 했다. <엘사>는 자신의 여왕 즉위식 날 처음으로 바깥 세상에 나와 조심스레 왕관을 받는다. 그러나 <엘사>의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곧 주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그녀의 손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피해 눈덮인 산으로 도망하는 엘사, 거기서 처음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게 된다. 아래의 동영상을 꼭 감상해야 블로그를 이해할 수 있다.

장갑 (두려움)
<엘사>는 어른이 되기까지 손에 장갑을 끼운채 살아야했다.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것이 두렵다. 실제로 그 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어려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손을 장갑밖으로 꺼낼 수 없게 만들었다. 두려움은 <엘사> 자신뿐 아니라 주위를 해치는 감정이었다.

프로그래머로서의 내게 두려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고유한 창조물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코딩할 수 있다. 이미 가치를 인정받은 소프트웨어의 한 부분을 코딩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 상상한 세계를 머리에서 꺼내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내 것을 창조해봤는데 그게 추한것이면 어쩌지?’ ‘내 상상력이 저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기라도 할까?’ ‘내 유치한 아이디어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 역시 내 손이 만드는 것이 두려워 장갑을 끼운채 살고 있다. 이제 나도 이 장갑을 벗어야겠다.

아름다운 창조물
눈덮인 산에 홀로 떨어진 <엘사>는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손 위에서 빛어진 눈송이들의 아름다운 문양과 귀여운 눈사람이 즐겁다. 이제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야.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
난 자유야.

절벽의 끝에 조심스레 발을 대니 얼음 다리(bridge)가 만들어지고, 이제는 거침없이 하늘위로 달려나간다. <엘사>가 달려나가는 하늘위로 다리가 채워져가는 장면은 너무 감격스러워 하마트면 울어버릴뻔했다.

elsa_bridge

코딩이 바로 <엘사>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이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풀어나갈때는 문제의 숲속에 갇혀서 깨닫지 못하지만, 프로그래밍의 본질은 머신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하고 (구글), 정지해있는 것들이 움직이게 하며(자동차), 침묵하던 사람들이 말하게 하는 것이다 (페이스북). 그래서 “모든 진보한 기술은 마술과 구분할 수 없다”는 아써 클라크의 말이 옳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어렵고 하드웨어를 이해하느라 머리 아프지만, 프로그래머는 <창조주>, <마법사>로서의 감격을 잊어선 안된다.

<엘사>는 처음부터 다리나 거대한 궁전을 만들지 않았고 눈송이, 눈사람을 만들어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자신의 한계를 하나 하나 시험해 나간다. 코딩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완전한 다리, 궁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손을 장갑안에 감추게끔 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창조의 시작이다. 하지만 조심스레 내밀던 발로 하늘을 향해 달려나가듯, 우리 역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그걸 넘어서는것이 중요하다. 아써 클라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가능한 것의 한계점을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한계점을 넘어서 조금 더 나아가 보는 것이다”. 내 한계를 넘어서 아름다운 창조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게 <비전> 이다.

얼음 궁전
<엘사>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얼음 궁전의 유일한 거주자는 <엘사>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으로 갖게된 자유가 홀로 사는 외로움보다 더 중요했다. 이후 스토리가 더 진행되면 왕국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만, <엘사>는 자신의 궁전에 홀로 살면서 창조하고 누리는 삶 역시 행복해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추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은 그 창조물의 유일한 사용자가 <나> 일때는 더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코딩할때, 누군가를 위해 그것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때때로  상상속의 “사용자” 때문에 자신없고 비참해질수 있다. 폴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3] 에서 지적했듯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은 그래서 실패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해내는 창조물 (아이디어)은 오로지 내가 사용하기 위해서 만들어야한다. <사용자>로서의 내가 기술의 최첨단에 서 있고, 나를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이 그런 나 자신을 만족시킨다면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한 SW를 만들어낸 것이다. 훗날 외로운 궁전에서 나온 <엘사>는 온 국민의 환호속에 여왕으로 귀환한다. 내가 만들고 스스로 누리는 그 SW 역시 같은 영광을 얻을지도 모른다.

<프로즌>의 주제곡은 이렇게 끝난다.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추위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The code never bothered me anyway. 어차피 코드가 힘들었던 적은 없어.

https://twitter.com/sm_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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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go 
The snow glows white on the mountain tonight
Not a footprint to be seen
A kingdom of isolation,
And it looks like I’m the Queen

오늘밤 산위에 눈이 하얗게 빛나고 있어요.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아요.
고립된 저 왕국, 이제 보니 내가 그곳의 여왕이네요.

The wind is howling like this swirling storm inside
Couldn’t keep it in, heaven knows I tried Don’t let them in, don’t let them see
Be the good girl you always have to be
Conceal, don’t feel, don’t let them know
Well, now they know

회오리 폭풍속처럼 바람이 부네요.
감출수가 없었어요. 하늘은 알아요 내가 노력했다는 걸.
아무도 들이지마, 누구도 알면 안돼. 언제나 착한 소녀로 살아야 해.
감춰. 느끼지마. 아무도 알게 하지마. 하지만 이제는 모두 알아요.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Let it go, let it go
Turn away and slam the door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이제 잡아둘 수 없어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뒤돌아서, 문을 닫아 버려요.

I don’t care
What they’re going to s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이제 신경쓰지 않아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폭풍은 계속 불어와도 돼요.
한번도 추위를 느낀적 없었으니까.

It’s funny how some distance
Makes everything seem small
And the fears that once controlled me
Can’t get to me at all

참 재밌어요. 조금 거리를 두었을땐 모든 것들이 작아 보이니.
한때 날 괴롭혔던 두려움은
이제 전혀 내게 없네요.

It’s time to see what I can do
To test the limits and break through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때죠.
내 한계를 시험해보고 그것을 넘어서보고.
내겐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아무런 룰도 없어요.
난 자유예요.

Let it go, let it go
I am one with the wind and sky
Let it go, let it go
You’ll never see me cry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지금은 바람과 하늘과 하나예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다시는 우는 모습은 없을거예요.

Here I stand
And here I’ll stay
Let the storm rage on

여기 내가 서있고
여기 내가 머무를거예요.
폭풍은 계속 불어도 돼요.

My power flurries through the air into the ground
My soul is spiraling in frozen fractals all around
And one thought crystallizes like an icy blast
I’m never going back,
The past is in the past

내 힘은 하늘과 땅에 흩날리고
내 영혼은 얼음 문양을 만들며 회오리쳐요.
한번의 생각이 얼음 폭풍처럼 크리스탈을 만들죠.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과거는 과거일 뿐이죠.

Let it go, let it go
And I’ll rise like the break of dawn
Let it go, let it go
That perfect girl is gone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새벽처럼 그렇게 일어설 거니까요.
잊어버려요, 걱정하지마요.
그 완벽한 소녀는 이제 없어요.

Here I stand
In the light of day
Let the storm rage on,
The cold never bothered me anyway

여기 내가 서있어요.
낮의 빛 가운데에.
폭풍이 계속 몰아쳐도 돼요.
추위는 한번도 괴롭지 않았으니까.

[1]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2] 비전, 눈으로 보는 행위.
[3]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집에서 일하기

전에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집에서 일한다.

얼마전 평소와 같이 일하는데 7살 딸 아이 (샬롯)의 친구가 놀러왔다. 코딩하다가 커피 마시러, 과자 부스러기를 담으려 주방을 왔다갔다 하는 나를 보며 아이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졌다. 그리곤 물었다: “Are you Charlotte’s brother? (샬롯 오빠예요?)”. 내가 약간 동안이긴 하지만 전형적인 폐인 너드몸매의 소유잔데 오빠라니…그 아이는 낮 시간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는 남자 어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난 그냥 고맙다고만 얘기했다.

나는 자주 큰애, 작은애를 학교에 등하교 시킨다. 등교 시간엔 출근길에 아이를 내려주는 아빠들이 제법 있어서 괜찮다. 문제는 오후 2시쯤 하교 시간이다. 코딩하다 시간되면 평소 작업복인 아디다스 삼줄 추리닝에 두손 집어넣고 학교로 어슬렁 걸어간다. 그러다보면 역시 아이를 픽업하러온 엄마 부대를 마주치게 된다. 평소 안면만 있는 한국 엄마들과 눈이 마주칠때면 얼른 눈길을 돌린다.  ‘저 아줌마는 매일 낮시간에 나오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엄마들 표정도 약간 당황해 하는 것 같다. ‘저 노는거 아니예요!!’ 소리는 마음에서만 맴돈다. 우리 집에 처음오는 사람들에게 날 소개하며 아내는 꼭 집에서 <일하는>거라고 강조한다. 부끄러워하는것 같다…그래서 손님이 갈때까지 오피스에 숨어있게 하는거겠지.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일상

이런것들이 집에서 일하면서 겪는 일상이다. 이런 방식으로 일한지 이제 2년이 되었다. 지금은 출퇴근 해야하는 직장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만큼 적응됐고 이 생활이 좋다. 시애틀에 2년전 이사오면서 집의 한 공간을 아래 사진과 같이 오피스로 꾸몄다. 오피스 안에는 프로그래밍 작업을 위한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다. 여러대의 서버, 넷웍 장비, 맥북, 잠잘 수 있는 소파, 두루마리 휴지,.. 심지어 한쪽에는 사우나실도 있다.

IMG_20131124_090218[우리집 한 구석에 마련한 오피스]

원래는 나만의 공간인 오피스로 꾸미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오피스 메이트가 생겼다. 역시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세살 짜리 친구 <클라라>인데 잠옷만 입고 다닌다. 지금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옆에서 병원놀이 하자고 졸라댄다. (잠깐 놀아주고 더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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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피스 메이트. 잠옷만 입고 다닌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추리닝 걸쳐입고 커피 한잔과 베이글 한개 들고 출근(?)해 회사 이메일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중요한 이메일만 우선 답장을 보낸다. 그리곤 당연히 다른 직장인들이 다 그렇듯 업무는 잠시 미루고 한참 웹서핑을 한다. 트위터, 뉴스, 블로그들을 돌아보면 시간이 잘 간다. 가끔 아내가 들어와 일 잘하나 살펴보는데, 혹 놀고 있다는 걸 들키면 <클라라>를 방에 풀어 놓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한참 놀다가 지겨워지면 코딩을 시작한다. 코딩하는 동안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일주일에 서너번 전화로 팀미팅이 있다. 가끔 화장실에서 집중하며, 설겆이하면서 미팅을 할때도 있는데 뭐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괜찮다. 중간 중간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집청소도 하고, 골프 연습장도 다녀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

우리 회사 유칼립투스의 직원중 약 80% 정도는 이렇게 집에서 일한다. 우리 회사만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다. 워드프레스를 만드는 오토마틱 [1], Ruby on Rails를 만든 David Hansson의 회사 37Signals [2], 그리고 현재 우리 CEO의 전 회사 MySQL [3] 모두 직원의 대부분이 집에서 일한다. 내가 이전에 잠시 일했던 스타트업 Fancy.com은 많은 개발자가 한국에 있는데 역시 모두 집에서 일한다. “재택근무”가 주는 어감은 여전히 <집에서도 부업으로 할 수 있는 000!>라는 스팸메일처럼 다소 2류 문화를 내포하지만, MySQL, 워드프레스, 유칼립투스 모두 소프트웨어 업계의 떠오르는 샛별들이다. 작년 야후가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모두 해고해 비판을 받았을때, 언론들은 새로운 형태의 조직으로 우리 회사와 워드프레스를 소개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집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혜택은 자유다. 위에서 설명했듯 우리 회사는 직원이 어디에서, 어떤 시간에 일하든 문제가 없다. 원하면 어디로든 이사갈 수 있고, 여행을 다니며 일해도 상관이 없다. 우리 직원중 한 사람은 사람이 살지 않고 인터넷도 안 들어오는 깊은 산속에서 밭을 일구어 살며 위성 인터넷으로 접속해 일을 한다. 어제는 집 앞에서 만났다고 쿠거(산 사자) 사진을 회사 전체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아직 회사에서 이 직원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나는 골프를 좋아해 주중에 하루는 꼭 라운딩을 나간다. 아침일찍 나가도 점심을 먹고서야 들어오는데, 남들 다 일할때 노는 것만큼 신나는게 없다. 아마 오피스를 나가야 한다면 이런 생활은 포기해야 할거다. 회사가 주는 이런 자유는 직원을 채용할 때 아주 강력한 미끼다. 실력있는 개발자에게 자유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으니까.. 

재택근무를 영어로는 흔히 “Remote employment” 로 지칭한다. 하지만 유칼립투스나 워드프레스는 스스로의 조직 형태를 “Distributed workforce”로 부른다. Remote employment는 헤드쿼터 오피스를 중심으로 매니저가 집에서 일하는 소수의 직원(remote)들을 관리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Distributed workforce는 애초에 헤드쿼터라는 물리적 오피스의 개념이 없이, 전세계에 분산되어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유칼립투스는 CEO부터 거의 모든 임원들까지 각 주에 흩어진 자신의 집에서 일한다. 종종 나 자신도 궁금한것은 이렇게 전세계에 분산돼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어떻게 좋은 성과(Performance)를 낼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워드프레스나 유칼립투스 모두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조직이다.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을 계산한다면 사실 일반 회사들에 비해 많지가 않다. 이들은 오피스에서 긴밀히 얼굴을 마주대고 회의를 할수도 없다. 회식자리에서 만드는 끈끈한 동료애도 기대할 수 없다.

아마 탁월한 동기부여 (motivation)가 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워드프레스, 37signals, MySQL, 유칼립투스의 공통점은 모두 오픈소스에서 시작한 회사라는 점이다. 집에서 일하는 것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의 원래 삶의 방식이다. 폴 그레이엄은 낮에는 밥 벌이를 위해 일하고, 밤에는 진짜 자신의 아름다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오픈소스 해커를 “낮 일” 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4]. 폴그레이엄이 <해커와 화가>를 썼던 10여년전에는 오픈소스 해커들이 진부한 낮일과 진짜 밤일을 분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픈소스가 소프트웨어의 주류로 자리잡으며 낮일과 밤일을 구분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집이 회사고 해킹(밤일)이 직업이다. 오픈소스 해커들에게 “아름다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 본업이 되었을때 나타나는 퍼포먼스는 매니저에 의해 잘 관리되는 구식 소프트웨어 회사의 조직을 압도한다. 혹 미심쩍다면, 집에서만 일하는 사람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평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된다. 사무실에선 책상에 앉아만 있어도 기본은 먹어준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오직 한가지 “코드”로만 평가 받는다.

개인적으로 오픈소스 회사에서 일하며 가장 기쁜 것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다. 아이가 옆에서 떠드는데 일이 되느냐고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하지만 그렇게 방해받아도 괜찮다. 막 유치원을 마치고 달려와 내미는 딸아이의 어설픈 그림 한장이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니까. 실제로 적막한 가운데서 코딩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옆에서 뛰어 놀때 더 즐겁게 일이 잘된다. 아마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감동받을때 나오는 주체못할 터보 코딩과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전화로 하는 팀미팅에선 직원들의 아이들 웃고 우는 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린다. 매일 출근했더라면 놓쳐버렸을 아이들의 커 가는 순간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몇가지 관리의 팁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다보니 오피스에서 일하는 회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조직을 관리한다. 그중 몇가지 팁만 소개해본다.

  • 지역 모임: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대화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달에 한번 팀 단위로 도시를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다. 시애틀, 뉴욕, 샌프란시스코등 팀원이 살고 있는 도시로 모여 일주일 정도 오피스를 렌트해 회의하거나 코딩한다. 우리보다 좀 더 갑부인 오토마틱경우는 그리스, 도쿄등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1].
  • 전체 모임: 큰 오피스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대신 그 돈으로 전 직원이 모이는 워크샵 (All-hands meeting)을 괜찮은 여행지에서 갖는다. 우리는 LA 근교의 휴양지에서 주로 모임을 갖고, 오토마틱경우는 전 세계의 휴양지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1].
  • 커뮤니케이션: 거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이메일, 채팅등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오피스에 나와 일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없다.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더라도 irc 채팅방에서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오픈소스회사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거의 모든 회사의 미팅을 외부에 공개된 irc 채팅방에서 하고, 발표는 외부로 스트리밍 한다.
  • 투명성: 매주 월요일 임원들은 전 직원에게 자기 부서의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CEO는 한주간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보고하고, 세일즈 임원은  몇개의 라이센스를 팔았는지 공개해야한다. CFO는 전 직원에게 현재 회사의 통장 잔고가 얼마인지 공개한다.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는 직원에게 더 정직해야 한다.
  • 회식: 직장의 꽃 회식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한다. 중요한 프로젝을 마치는등 이벤트때마다 가족, 친구들과 나가 회식하고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면 된다.
  • 개발 장비: 개발팀의 컴퓨터 장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팀원들은 여러대의 서버를 집에서 돌리고, 맥프로 레티나등과 같은 최신 노트북을 지급받는다.

이처럼 집에서 일하는 회사 조직이 모든 경우에 맞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특히 소프트웨어, 서비스분야에서 시작하는 회사에서는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침, 저녁으로 낭비하는 출퇴근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거나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일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주의할것은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일을 자기 가족만큼 사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픈소스를 하는 사람들에겐 일과 삶의 구분이 없다. 코딩은 삶의 일부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모습을 집에서 보는게 자연스럽다. 놀다가 코딩하고, 코딩하다가 노는게 우리 삶의 방식이다. 구성원이 코딩을 직업으로만 생각해 코딩과 삶을 공간적, 시간적으로 구분짓고자 한다면 아마도 우리의 이 방식은 맞지 않을 것이다.

[1] http://www.businessinsider.com/automattics-awesome-remote-work-culture-2013-8
[2] http://www.forbes.com/sites/danschawbel/2013/03/29/david-heinemeier-hansson-every-employee-should-work-from-home/
[3] http://www.entrepreneur.com/article/228752#
[4] 해커와 화가-2

아이디어 생각 안하기

들어가며

난 어려서부터 코딩한 그런 창조적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98년 당시 가장 쿨했던 전공 컴퓨터공학(지금은 상상 안가겠지만..) 에 발 담궈봤을 뿐이다. 처음 1년간은 C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 학점이 계속 “씨 씨” 욕을 해댔다. 1년정도 지났을때 좀 색다른 경험이 있었다. 교회의 젊은 전도사님이 어느날엔가 잡지책을 한권 펴 놓고 끙끙대고 있는걸 봤다. 무엇을 하시느냐 묻자 잡지사의 상금이  걸린 퍼즐 문제를 푼다고 했다. 그분은 사실 좀 많이 가난했었는데 거기에 진심으로 희망을 걸고 계신 듯 했다. 그런데 문제들중 딱 한가지만 모르겠다고 울상이었다.  퍼즐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고 중간 중간에 비어있는 연산부호를 넣어 결과 숫자를 만들어내는 문제였다. ‘안 어려워 보이는데?’ 생각했지만 한참 끙끙대도 조합이 안 나왔다. 가능한 연산자의 조합이 수도 없이 많으니 당연했다. 그러다가 언뜻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가만..코드로 짜면 그 많은 조합을 컴퓨터가 할 수 있잖아?’. 막상 코딩하는데는 몇분 안 걸렸고 프로그램은 곧바로 답을 찾아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전도사님은 눈이 휘둥그레져, 과장하자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한 사람처럼 흥분했다. 그 주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저사람 천재”라고, 심지어는 설교중에도 토해내던 흥분이 다음 호 잡지의 당첨자 목록에 본인 이름이 없는걸 확인한 후에야 멈췄다.

두뇌의 조작질

작은 에피소드를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내 코드가 어떤 사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학교에서 해오던 숙제, 프로젝트는 매년 반복되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훈련이었다면 그날의 코딩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살아있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요즘 종종 블로그를 읽고 일개 프로그래머인 내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상담해오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재미있고 신선하다. 그런데 거의 모든 경우 슬라이드를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아이디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수가 없다. 많은 경우 본인의 아이디어가 “새롭다” 또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말이 맞다. 새롭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는 무한대로 만들어낼수 있다. 트위터에 한글자 더 추가해 141 글자를 가능케 하는 것도 아이디어고, 139자로 제한하는 것도 아이디어다. 다만 아무도 원하지 않을 뿐.

폴 그레이엄이 “스타트업 아이디어”에서 지적했듯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하다 [1]. 무한한 아이디어의 바다에는 반짝이는 돌들이 너무 많아서 우연히 예쁜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고 진주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나는 종종 아침에 샤워하다가 혹은 밤늦게 뜨거운 욕조에 누워 생각하다가 깜짝 놀랄 쿨한 아이디어가 생각나곤 한다. 흥분된 마음에 검색을 해보고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걸 알땐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 우뇌는 어떻게 구현할까 생각하고, 좌뇌는 벌써 빌게이츠집에 놀러가 있다. 생각의 그 다음단계는 쿨한 아이디어가 해결하는 문제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내 아이디어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가정한다. 생각이 더 깊어지면 창조해낸 그 문제가 내게 그동안 고통이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문제가 주는 고통이 심하다고 믿으니 아이디어는 더 빛나 보인다. 이 스타트업은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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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냉정하게 돌아보면 결국 두뇌의 장난질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까지는 사실 그 문제가 쓰라려본 적이 없다. 아이디어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두뇌가 한 조작질에 또 한번 당했을 뿐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싶어한 그 순간부터 내 두뇌는 내 편이 아니다.

문제부터 생각할때

성공한 스타트업은 모두 문제에서 시작한다. 트위터의 창업자지만 세력 다툼에서 밀린 잭 도시(Jack Dorsey)는 Square라는 모바일 페이먼트(Payment) 스타트업을 다시 시작해 현재 적어도 3조원 이상의 가치를 평가 받는다. 잭 도시는 물건을 살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왜 지금 내가 지갑에 손을 가져가 신용카드를 꺼내야 하지?” “왜 카드가 승인나서 영수증이 나올때까지 어색하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 “왜 또 나는 영수증에 사인해서 다시 돌려주고, 카드를 넣은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어야 하지?” [2] 보통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결제의 과정이 잭 도시의 일상에서는 괴로움이었다. 아마도 리누스 토발즈가 본인을 ‘게으름뱅이’라고 지칭한 이유와 같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겐 익숙한 삶의 방식이 창업자들에겐 너무 귀찮고 불 필요해서 코딩으로 해결해야하는 문제로 보인 것이다.

사실 잭 도시, 리누스 토발즈 같은 “난 놈” 들에게만 그런 문제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를 다른 이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주 미국에서는 홈조이라는 집 청소 스타트업이 약 400억 이상의 펀드를 받았다 [3]. 창업 1년만에 꽤 많은 매출을 올리는 알짜배기 스타트업으로 알려져 이곳 기준으로도 큰 펀드를 받아낸 것이다. 홈조이는 깔끔한 웹 페이지에서 집 청소를 요청하면 미국의 대도시에 있는 청소 업체들을 연결해 청소부를 파송한다. 스스로 청소부를 고용할 필요도 없고 홈페이지 하나 예쁘게 만든다니 마치 대동강 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마냥 기발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런 것일까? 아래는 홈조이의 창업자 Adora Cheung의 트윗에서 발췌한 것이다. 청소부들과 함께 추수감사 식사후 찍은 사진이다.

피부색도 사회적 클래스도 완전히 다른 청소부 사회에 들어가 그 업체들과 네트웍을 만들만한 용기, 적극성을 가진 프로그래머가 얼마나 될까? 실제 Adora Cheung은 인터뷰에서 본인이 청소부로 일했던 경험이 중요했다고 얘기했다. “집청소” 혹은 “청소부 고용” 이라는 문제는 아마도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누구나 아는 문제인데 그걸 인터넷으로 가지고 온 것은 홈조이가 처음이다. 때론 문제를 알지만 해결할 용기가 없을 뿐이다. 비슷한 다른 예로 Stripe라는 페이먼트 스타트업이 있다 [4].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온라인에서 돈 받고 파는 그 과정을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누구도 해결하려 들지 않았다. 코딩은 자신 있지만, 금융회사를 상대하는건 상상도 못할 일이기 때문에. 그걸 처음 시도해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고 페이먼트 서비스를 만든것이 Stripe 이다. 모든 프로그래머가 고통을 느꼈지만 금융회사의 문을 한번 두드려볼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두뇌는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한다. 그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문제를 발견하면서 스타트업은 시작된다. 때로는 홈조이, Stripe의 예처럼 스스로 단정지은 영역을 넘지 못해 알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는 사실 우리가 문제를 발견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있다. “Founders attract the problem (창업자는 문제들을 매혹시킨다)”. 문제가 매력적이어야 하는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 숨어서 존재하는 문제들중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을만큼 당신이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표현도 좋다. “Problems want to be discovered (문제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준비된 사람에게 보일 뿐이다. Ev Williams는 Blogger, Twitter에 이어서 최근엔 Medium 이라는 세번째 스타트업을 창업해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꾸준히 한 우물만 파다보니, “웹에서 글쓰기” 라는 주제에서는 대박 문제들이 그에게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스타트업을 꿈꾼다면 그래서 보이지 않는 문제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째, 무언가를 정말 좋아해야 하고, 둘째는 작은 문제부터 해결해봐야 한다.  Ev Williams가 글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2조원 넘는 재산이 있으면서도 medium.com을 창업할 이유가 없다. 잭 도시는 아주 어려서부터 트위터를 상상하고 있었다 [5]. 두 사람 다 문제에 빠져 사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쥬커버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치과 사무실과 자신의 집을 연결하는 작은 문제를 메신져를 코딩해 해결했다. 페이스북의 전신 Facemesh는 내성적이라 여친을 사귈 수 없었던 쥬커버그가 여학생들 사진을 스토킹하며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었다.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소셜 네트웍이라는 대박 문제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 생각은 멈추고, 좋아하는 것(직업일수도 있고 취미 일수도 있는)을 계속 하자. 그 과정에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하자. 혹 문제가 대박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내게 중요하다면 코딩으로 해결해보자. 그러다보면 언젠가 대박 문제가 당신에게 노크할지도 모른다.

loveactually

https://twitter.com/sm_park

[1] 스타트업 아이디어 (번역)
[2] http://techcrunch.com/2011/12/25/what-startup-to-build/
[3] http://techcrunch.com/2013/12/05/homejoy-38-m/
[4] http://paulgraham.com/schlep.html
[5] 장관님, 이런 놈들을 찾으십니까?